(S1 : 차지연 - 가리워진 길 [03:33])

11월 10일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을 모아

시집을 내려 했던 청년 윤동주는

친필로 써온 원고들을 꼼꼼히 제본한 뒤

연필로 표지에 두 글자를 써넣었습니다.

'병원'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

병원은 앓는 사람을 고치는 곳이기에

혹시 이 시집이 앓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윤동주의 사후에 고이 보관해왔던 시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지인 정병욱은

당시의 그의 말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M1 : 이영미 - 이 길 위에 서서[04:21])

일제강점기, 암흑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한없는 부끄러움을 이야기했던 젊음.

출간하고팠던 그 시집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어

원고를 서랍장 깊이 넣어야 했던 그는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 투성이"

시인이 남겼던 이 말은 시공을 초월해

2016년 가을의 한국사회에 투영됩니다.

상상을 뛰어넘고, 상식을 무력화시키는

의혹들이 넘쳐나 교양과 인내의 영역을

이미 벗어나 버린 지금…

마음을 다친 사람들은 아마도

이 시구에 공감할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윤동주 < 병원 >.

(M2 : 차지연 - 잃어버린 얼굴 [03:24])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길 바라던

그 시인이 지금 우리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마냥 부끄러웠을 것만 같은 자괴감의 시대.

그렇습니다. 그가 당초 '병원'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었던 그 시집은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인의 절절함에 비해 발행된

시집의 제목은 오히려 낭만적이어서

당혹스러운 오늘…

원 표지에 그가 썼다가 지운 '병원'이란

글씨는 역력해서 또한

오히려 공감이 가는 오늘…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M3 : 부활 - 작은 너에게 [04:05])

시인 윤동주를 이야기할 때, 그의 두 친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젊은 시인 윤동주와 함께 고민하고 저항하며 싸워온

송몽규와 강처중.

이 아름다운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의 극의 시작에는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독립운동을 하러 일본에 온 것 아닌가?”

“부끄럽지만, 저는 독립운동을 할 능력이 안 됩니다.”

이에 대한 반증인 걸까, 윤동주의 시에서는

유독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앞장서 독립운동을 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시를 써 민중의

독립 의식을 키웠다는 이유로 일제의 고문에

눈을 감은 그의 부끄러움은

지금의 우리의 현실에서의 무엇과 비교가 가능할까...

(S2 : 서울시립예술단 - 달을 쏘다 [04:3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투옥되고

청년들은 징집되며

조선을 가르치는 스승은 끌려가고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강요받던 그 시기를

청년 윤동주와 그의 친구들은

‘거친 농담을 건네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세상은 또 다른 거친 농담을

건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쉬고) 오늘의 방송을 모두 마칩니다.

구은서  chdms032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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