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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7주차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저녁방송

제작: 장경수 / 아나운서: 김민찬 / 기술: 배홍준

( S1: Moby - Extreme Ways [4:57] )

제 이름은 김민찬.

해외 유명 인사들의 성공 요인을

수사하는 기관인 CSI 소속이죠.

저는 그 중에서도 해외 유명인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분석가입니다.

오늘 제가 분석할 사람은 바로 아돌프 다슬러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수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M1: Zedd, Kehlani – Good Thing [3:32])

아돌프 다슬러. 1900년 11월 3일생

독일 바이에른 헤르초게나우라흐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신발 공장의 봉제 기술사였고,

어머니는 세탁소를 운영하셨다고 하네요.

제가 그 때 당시에 대해

조사를 좀 해봤는데,

공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많았지만

그 직업이 금방 망할 것 이라며

자식들에겐 다른 직업을 요구하는

부모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아돌프의 집도 예외는 아니었죠.

그렇다면 어떻게 아돌프는

현재의 아디다스를 창업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제빵사가 되기를 매우 원했지만,

아돌프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집안 환경 상, 그는 절대로 제빵에 대한

기술을 배울 수 있거나 관심조차 가질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대신 섬유 가공, 신발 세탁, 제단, 제본 등에 대해선

부족함 없이 배울 수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돌프는

어린시절부터 운동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쉽게 닳아버리는 운동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아돌프는 본격적으로

어떻게 하면 내구성이 강한 운동화를 만들까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M2: Maroon5 – Memories [3:10] )

그가 20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일하시는 세탁소에서

홀로 트레이닝화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또한 1924년엔

축구화를 따로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아돌프는 좋은 신발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의 내향적인 성격으로 인해

누구한테도 신발을 팔지를 못했었죠.

하지만 그를 도와줄 한명의 사람이

찾아오게 됩니다.

바로 그의 형 루돌프 아슬러 인데요.

당시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당시라

그의 형은 참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날 무렵,

형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동생이 만든 운동화가 좋은 것을 알았지만,

동생의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팔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다행히 그의 형은 아돌프와는 달리

매우 외향적인 성격이었고,

발이 매우 넓어, 마을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죠.

루돌프는 동생을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신발을 팔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도와주게 됩니다.

(M3: Lauv – Feelings [3:10] )

이렇게 둘은 서로의 장점을 살려

신발 공장을 차리게 되죠.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여자 800m 달리기에서 리나 라드케라는

선수가 아돌프가 만든 신발을 신고

세계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32년 LA올림픽에선 아서 요나스가

육상 100m에서 역시 그가 만든 신발을 신고

동메달을 따며

그들의 신발이 점점

독일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형제에게

엄청난 시련이 찾아오게 됩니다.

바로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입니다.

전쟁 초에는 그래도

그들의 신발 공장 사업이 아직

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너무 길어지자

그들의 회사에도 슬슬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고

사업 여건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발생을 했는데요.

바로 형제의 분열입니다.

(M4: Stephanie Poetri – I love you 3000 [3:30] )

형인 루돌프는 1차 세계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때 역시 참전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 시기가 하필

형제간에 회사 경영권으로 다툼이 심하게 있던

시기였습니다.

더군다나 아돌프는 징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형은 이 시기를 이용해

아돌프가 경영권을 완전히 잡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고 하네요.

이로 인해 형제 사이에 더욱 더 금이 가고

결국 둘은 사이가 멀어져서

회사를 따로 차리게 됩니다.

이때 아돌프가 세운 회사가 바로

오늘날의 “아디다스”이고,

그의 형 루돌프가 세운 회사가 바로

오늘날의 “푸마”입니다.

이렇게 아돌프는 아디다스를 세우면서

정말 많은 신발들을 만들어 냅니다.

축구화부터 시작을 하여

트레이닝화, 농구화, 슈퍼스타 등

정말 다양한 신발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점점 분야를 넓혀

축구공, 농구공 뿐만 아니라

의류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아디다스의 주가는 점점 올라가게 되죠.

(M5: Lauv – Breathe [3:58] )

하지만 그는 이제 나이가 너무 들어

회사 경영에 힘을 못쓰게 되었고,

그의 아들 호르스트가

경영권을 잡고

당시 아디다스의 경쟁회사였던

나이키와의 신경전이 매우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호르스트는 무리하게

미국 전체 아디다스의 영업권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는 독이 되어버렸고

회사 재정이 점점 악화되어갔습니다.

아돌프는 그가 숨지기 전

아디다스에 대한 경영권을

다슬러 가문에서

전문 경영인 베르나드타피에로

넘겨주게 되며,

오늘날의 아디다스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아디다스는

재정이 좋아지게 되며,

현재 나이키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회사로

되게 됩니다.

( S2: Moby - Extreme Ways [4:57] )

아돌프 다슬러가 아디다스를 세울 때

딱 한가지 가치관이 있었는데요.

바로 “불가능한 일은 없다”입니다.

형제가 갈라지면서 내성적인 성격의

아돌프가 아디다스를 과연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라는 많은 걱정들을 했는데요.

그때 그는 저 가치관을 내세우며,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죠.

저도 여러분들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오늘 저는 이만 퇴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돌프 다슬러. 수사 종료.

장경수 수습국원  cubrad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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