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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지오> - 13주차2019년 6월 5일 수요일 저녁방송

제작 : 장주희 / 아나운서 : 김민찬 / 기술 : 장주희

(S1 : 커피소년 – 행복의 주문 [03:25])

‘자다’의 명사형은 ‘잠’, ‘가다’의 명사형은 ‘감’,

‘기쁘다’의 명사형은 ‘기쁨’.

그렇다면 ‘사랑하는 존재’의 명사형은 무엇일까요?

장재구 작가는 이를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하는 존재’를 뜻한다는 거죠.

비슷하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삶’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 사람 삶, 이 세 글자가 참 닮았죠?

여러분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가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주제는

“사랑, 사람, 삶”입니다.

(M1 : 세븐틴 – 어쩌나 [03:15])

첫 번째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생명이든지 한평생 쓸 심박의 횟수를

가지고서 태어난다는 말이 너무 좋아서

나는 몰래 줄곧 그 문장을 외우고 있었다.

너와 마주할 때면 생을 갉아먹으며

질주하는 박동에 차디찬 손을 짚고.

몇 번이 남았는지 헤아릴 새도 없이

나는 가장 달콤한 단명을 맞겠다고,

남은 모든 맥박을 네게 바치겠다고

몇 번을 되뇌었다.

여러분이 한평생 쓸 심박의 횟수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예를 들어서 심장이 10억번 뛰고 나면

죽는다고 생각해봐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심장이 쿵쾅쿵쾅 더 빨리 뛰겠죠.

내 생을 갉아먹고 있는 건데,

그걸 알면서도 계속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설령 더 일찍 죽게 되더라도

‘달콤한 단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사람.

사랑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다르겠지만

제 정의는 그렇습니다.

그런 게 진짜 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M2 : 볼빨간사춘기 – 별 보러 갈래? [03:26])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흘러 더럽고 무섭고 힘들고 슬픈

어른들의 세계를 알게 된 후에는,

이제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지켜주려 한다.

온힘을 다해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산타클로스가 된다.

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 산타클로스는 있다.

이 이야기는 ‘고수리’ 작가의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에서 발췌했습니다.

음. 사람에 대해 각자 복잡한 정의들이 있지만

사람이라는 게 결국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타 클로스를 믿다가, 산타 클로스를 안 믿다가

결국엔 본인이 산타 클로스가 되는 거죠.

여러분의 삶은 어디쯤까지 왔나요?

(M3 : 김재환 – 랄라 [03:06])

세 번째로 들려드릴 이야기는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예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 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 없어요.

이 이야기는 ‘서머싯 몸’의

<면도날>에서 발췌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요.

영원히 젊을 수도 없고, 영원히 부유할 수도 없고,

영원히 사랑할 수도 없겠죠.

작가는 ‘영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어리석은 건,

젊음을 손에 쥐고도 제대로 누리지 않는 것,

여유가 있음에도 아까워서 돈 한 푼 쓰지 않는 것,

사랑할 수 있음에도 괜한 잡생각 때문에

충분히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충분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삶이겠죠.

(M4 : EXO – 피터팬 [03:54])

마지막 이야기는 ‘사랑, 사람, 삶’입니다.

어제는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삶의 본질에 대해 우린 다양한 해석을 내놓거나

음미하기를 좋아한다.

어느 작가는 “작은 인연과 오해를 풀기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우린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영화 대사도

한 번쯤 되새길만 하다.

나는 어렵게 이야기하기보다 ‘사람 ’사랑 ‘삶’,

이 세 단어의 유사성을 토대로 말하고 싶다.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 아닐까?

(M5 : 데이식스 – 마라톤 [03:40])

이 이야기는, 제가 굉장히 자주 소개해드린 책이죠.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서 발췌했습니다.

몇몇 언어학자들은 사람, 사랑, 삶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뿌리를 만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세 단어 모두가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됐다는 거죠.

믿거나 말거나지만

‘사랑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 하다’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보면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S2 : 긱스 – 어때 [03:46])

보노보노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함께 한참을 고민하던 보노보노의 친구 너부리는

“에이. 배가 고프기 시작했으니까

일단 집에 갔다가 내일 또 오자.”라고 말합니다.

배고파 죽겠는데 사랑이든 일이 뭐 중요한가요?

지금까지 삶의 거창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결국엔 어떤 방식이든

우리가 지금도 살아가는 게 삶이겠죠.

사랑 사람 삶.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 ‘사랑 사람 삶’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할게요.

다음 주에 만나요. 안녕~

장주희 실무부국장  xng03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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